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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수색대> 처절한 전투의 생생한 기록! 동래부순절도

<박물관 수색대> 처절한 전투의 생생한 기록! 동래부순절도

등록일자: 2024.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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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KFN뉴스는 우리 군 관련 박물관이 소개한 소장품과 관련된 역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임진왜란의 시작을 알린 동래성 전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안재현 기자의 보돕니다.

2005년 6월, 부산 지하철 3호선 수안동역 공사 현장에서 수많은 유골이 발견됩니다.

유골의 상태는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였습니다.

무언가에 맞아 함몰된 남성의 두개골과 칼에 베인 자국이 남은 여성의 두개골은 대량 살육의 현장을 증언합니다.

어린아이의 유골엔 총알에 맞은 자국이 선명합니다.

바로 1592년 5월 25일,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왜군이 동래성을 함락시키고 수비군과 주민들을 무자비하게 살육한 흔적입니다.

동래성 전투의 모습은 1658년에 그려진 동래부순절도를 통해서도 남았습니다.

조선 침공의 첫 관문인 부산진을 함락시키고 동래성으로 몰려온 왜군의 명분은 ‘가아도’, 바로 ‘명을 공격할테니 길을 빌려달라’였습니다.

이런 명분에 동래부 부사 송상현은 ‘가도난’, ‘싸우다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고 답해 동래성 전투는 시작됩니다.

조선군은 왜군의 공격에 활로 맞서지만, 오랜 내전을 치르며 경험이 풍부했던 왜군은 성의 취약점을 찾아내 돌파합니다.

조선군 지휘관 중 하나인 병상좌병마사 이각은 도망쳤고, 이후 그 사실이 밝혀져 참형을 받습니다.

하지만 성안의 조선군과 주민들 그리고 부사 송상현은 최후의 순간까지 싸웠습니다.

수비군은 성안에 난입한 왜군에 맞서 당파와 각궁으로 저항했습니다.

지붕 위로 올라간 두 여인은 기와를 던지며 저항했고, 왜군 세 명과 함께 순절합니다.

성이 함락되자 부사 송상현은 관복을 차려입고 북쪽에 있는 선조를 향해 세 번 절하고 자결합니다.

승리의 역사 대신 패배의 역사가 기록된 동래부순절도.

우리는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KFN뉴스 안재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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