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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지를 찾아서> 서울을 되찾다, 서울수복전투

<전적지를 찾아서> 서울을 되찾다, 서울수복전투

등록일자: 2024.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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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호국영웅들의 흔적이 담긴 전적지를 기자가 직접 찾아가는 전적지를 찾아서 시간입니다. 네 번째 순서로, 서울 수복 전초전이 벌어진 현장을 안재현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국군과 유엔군은 수도 서울을 향해 진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북한군은 무너졌고, 이는 육군 군사연구소에서 발간한 ‘6·25전쟁 시 북한군 노획문서Ⅱ권’에서도 확인됩니다.

모든 조건과 환경에 비추어 전투하기 불가능함을 느끼고 개별적 지휘관들은 퇴각명령을 내렸음.

서울을 향한 거침없던 진격은 서울 서쪽, 연희동 일대에서 위기를 맞습니다.

도주하던 북한군은 연희104고지와 안산 일대에 모여 방어선을 만들었습니다.

우리 해병대 1대대 장병들은 인천상륙작전 이후 처음으로 거센 저항을 받았지만 2시간의 혈전 끝에 8명의 전사자와 20명의 부상자를 내고 마침내 고지를 점령합니다.

연희104고지의 이름은 지금도 남아있는데, 지금도 남아있는 고지 앞 버스정류장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주택가 사이를 지나 올라간 연희104고지 위에는 해병대원들의 용맹함과 희생을 기리기 위한 전적비가 세워졌습니다.

연희104고지 전적비는 모두 2개가 있는데요, 숨겨진 계단 밑으로 내려와 보면 이렇게 1958년도에 세워진 첫 번째 비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04고지를 돌파한 해병대원들은 충정로와 경의선 터널이 지나는 터널고지를 향해 진격했습니다.

충정로에는 당시 전투현장을 담은 사진 속에도 보일 정도로 오래된 아파트, 충정아파트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편 수많은 사람이 무심코 오가는 옛 서울역, 문화서울 284 건물에도 서울 수복 전투의 상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건물 외벽 곳곳에 희미하게 남은 총탄 자국 속에선 치열한 전투의 흔적이 엿보입니다.

서측 복도 끝에는 전투의 흔적이 복구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곳곳이 깨진 벽에는 여전히 탄환이 박혀있고, 구멍이 뚫려 아픈 역사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치열한 시가전 끝에 해병대원들이 중앙청에 태극기를 올리며 3개월 만에 되찾은 서울은 많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구 소련의 기록에 따르면 북한 치하의 서울 시민 10만 명 이상이 700개 이상의 방어벽 설치를 위해 동원됐고, 수많은 시민이 미아리 고개를 통해 납북된 이후 돌아오지 못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KFN뉴스 안재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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